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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구잡이 텍스트.
거진 메모장 복사 붙여넣기.
배규무는 생동하는 것들에 집중한다. 생존이라는 같은 욕구를 가진 존재들을 그 환경과 함께 관찰한다. 생존 욕구로 인해 발생하는 각자의 기작과 다양한 삶이 교차되는 지점에 흥미를 가지고, 이들의 삶을 작가의 삶과 밀접하게 인식한다. 서로의 생존에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일종의 키메라로 보고, 생존의 동료로서 이들을 작품으로 끌고 온다.
Vagyoomoo focuses on living things. She observes lives that have the same desire- survival- with their environment. She is interested in the intersection of their own mechanisms and various lives caused by their desire to survive, and recognize their lives closely. She defines that every lives should have some relationship with another as a kind of chimera, and lead them to on ther works as colleagues of survival.
작품 하나 하나에 밀도있게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전시를 고려하거나 할 때 작품 하나에 에너지를 싣는 것 보단작품들이 하나의 환경, 풍경 또는 구성이되어 작가인 나 자신을 포함한 관람자를 휩싸는 것.휩싸인 관람자가 다양한 의지를 가진 생물이 우글거리는 가운데에 서있음을 느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마 제가 평생을 느껴온 삶의 인상일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주장하는 수많은 것들의 울림과 그것들이 겹치는 것. 그 가운데에 내 존재를 주장하며 버티는 것.그렇기때문에 저의 그림이 평평하게 그리고 다듬어져서 존재하기보다는울렁거리거나 중간에 우뚝 서있거나 어딘가에 군체로 모여있거나 급작스럽게 널려있거나 하는 등, 예기치 못하게 마주치는 것, 정돈되지 않고 포장되지 않은 모습을 원합니다. 그것들의 성질머리가 도드라져 환경을 장악할 수도 있고, 그것들이 환경에 영향받음을 그대로 수용할 수도 있는 그런 상태이길 원합니다.이러한 이유때문에 평면으로 이루어진 작업이나 입체로 이루어진 작업을 배치함에 있어 큰 구분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발산할 수 있는 특징이 다른 재료일 뿐인 것으로 저에게 인식됩니다. 저는 입체와 평면이 구분되기보다는 뒤섞여 하나의 리얼한 환경, 리얼한 인상을 주기를 원합니다.
작업물로 환경을 조성하기.
각자 캐릭터을이 살아가는 것이,
생존욕구를 주장하는 것이
서로에게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는지.
‘경계’에 일정 이상의 집중을 합니다.
경계 자체를 구성하는 것 보다는 경계를 흐리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직접 경계를 흐리고자 하는 시도 보다는, 실제로 그것들이 경계가 흐림을 증명하거나 찾아내고 작업으로 불러옵니다.
경계, 피부, 껍데기로 구분되는 것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합니다.
제가 만드는 입체 작업은 완결성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금이 가있고, 마감이 다소 부족합니다.
완성된 형체로의 뚜렷함보다는 공간을 향하고 있는 아직 성장 혹은 나이듦이 진행중인
분열중인 세포의 인상의 마무리를 줍니다.
평면 작업에 있어서도,
그 작품이 존재하기 때문에 구분되는 것이지
공간과 작품을 뚜렷이 괴리시키고자 하지 않습니다.
작품은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감을 줍니다.
경계가 또렷하여 존재감이 있지 않습니다.
화지의 형태들도 제멋대로 비죽거리길 원합니다.
의도적이지만 자연스러우면서
적당히 불편하지 않은 화지 형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경계를 흐린 지점을 찾는 것은 완결성에 대한 집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도로 완성되고 마감이 잘 된 것에 대해 반발합니다.
가장 취약한 부분들이 그대로 노출되고, 사실은 그것이 그 존재의 핵심임을
취약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지향합니다.
저는 각각의 생물들이 생존하고자 하는 욕구들이 부딪히면서 생존의 영역에서 교집합이 일어나고 그 범위가 그물처럼 뻗어가며 생태계가 생겨났다고 시각적으로 떠올립니다. 이런 서로의 생존 욕구가 부딪히는 것, 교집합이 일어나는 것이 서로간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라 보면 되는데요,
저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나무의 생존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무와 인간이 부상/상처에 대처하는 방법을 비교하고 같은 점을 그룹화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삶을 이어감에 있어 나무를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동료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식물은 동물과 크게는 서로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주고 받는 상호작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이렇게 내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음에 일정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나무의 생존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면서 이런 작업들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사람도 장내 미생물과 평생 상호작용을 하고 사는 것처럼 나무도 주변의 미생물과 교류하며 생존해가는데, 나무는 아무래도 정박한 삶을 살다보니 보다 이런 교류를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 뿌리 근처에 마이크로 바이옴을 가지고 있구요. 잎사귀의 기공을 통해서도 많은 미생물이 들어왔다 나가기도 합니다. 식물종은 자신에게 필요한 미생물을 부르거나 유해한 미생물을 제거하기 위해 화학적인 작동을 합니다.
나무를 관찰하다보면 앞서 말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미생물은 물론이요, 우리 눈에 보이는 지의류, 이끼, 버섯, 그리고 수많은 곤충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자신이 아닌 것들을 주렁주렁 달고서 생존해가는 나무는 말그대로 여러개가 뭉쳐진 하나의 덩어리같은 존재입니다. 나무에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필요한 것들을 이용해 내쫓는 작용은 곧, 나무가 불러온 다른 생물들이 나무의 체외에 있는 장기를 연상 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완전히 다른 개체로 구분이 됨에도 서로간의, 일종의 장기로 작동하는 운명공동체 같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렇듯 식물종이 가지는 관계에서 이미지를 끌어와 작업을 하였는데, 주로 주목한 관계로는 물벼룩과 통발식물이라는 식충식물, 아즈테카개미와 케크로피아 나무, 벌과 밀원식물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통발식물은 식충식물이기에 여러 곤충, 미생물을 먹는 것으로 영양보충을 하기도 하는데, 물벼룩 역시 이들의 희생양 중 하나 입니다. 물벼룩은 이 식물에 반응하여 자신들의 부속지를 보통의 물벼룩보다 길게 길러 이들의 공격을 피합니다. 통발식물의 입보다 몸길이를 길게 만든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습니다. 케크로피아나무는 개미에게 고체로된 영양분을 제공합니다. 이에 개미는 나무에 상처가 났을 때 신속하게 나무를 치료하여 자신들이 영양분을 얻는데에 문제가 없도록 합니다. 또한 나무의 천적 역시 개미들이 쫓아냅니다. 서로의 생존을 위해 밀착된 관계를 보여줍니다. 벌과 밀원식물은 많은 분들이 알고 있듯, 벌이 식물의 수분을 책임져주고, 자신들의 밥을 얻어갑니다.
전시를 설치 하는데에 주로 생각했던 것은 첫번째로는 각자의 작품들이 모여 하나의 군락을 이루는, 서로간에 영향을 끼치는 시도를 하고싶었던 것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도처에 있음 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평면에 입체적 존재감을 불어넣기 위해 벽 대신 좌대를 짜서, 펠트가 가진 우글거리는 성질을 보여주고, 털표면이 강조되어 보다 하나의 오브제처럼 느껴질 수 있는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조각 작품도 독립된 좌대를 쓰기도 하지만 평면과 때로는 영역을 공유하면서 마치 우리 삶에서 내가 내 신체를 무엇과 공유하고 나무가 자신의 신체를 무엇과 공유하듯이. 단독 개체로 존재하지 않음과 동시에 나와 삶을 공유하는 것들이 도처에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저는 저의 생존하고자 하는 의지를 확장시켜 여러 생물들의 생존하는 방식과 생존하고자 하는 욕구가 보이는 물질 등을 작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존의지를 표현하기도 하고, 여러 생물들 생존 욕구가 엮이면서 발생하는 사건 및 관계에 중점을 두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욕구들의 발산과 충돌을 표현하는 데에, 주로 펠트 위에 오일파스텔로 그림을 그리거나 도자 점토를 이용하여 입체 조형을 만드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펠트의 경우, 다양한 재료를 탐구하기 위해 화방을 오가던 때에 펠트가 가진 원색적 색감과 펠트의 질감에 끌림을 느껴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펠트의 질감, 즉 표면의 짧은 털은 곧 동물의 가죽처럼 느껴지기도 하였고, 그러한 질감 덕분에 어떤 재료, 특히 오일파스텔을 사용했을 때 이미지가 펠트에 압착된 느낌보다는 레이어링 되는, 조금 부유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는 제가 생존의 위협-불안과 같은 감정 등-을 느낄 때 세상과는 유리된 인상과 닮았습니다. 또한 오일파스텔의 제한된 색상과 강렬한 색감은 모두 생존하기 위한 욕구를 뿜어내는 것,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며 영역을 확보하는 독자적 존재들이 서로 부딪히거나 엮이는 것을 표현하기에 적합합니다.
도자점토는 가소성이 좋으면서도 만드는 과정에서의 작은 변화가 건조 과정에서 큰 변수로 드러나기도 하고, 잘 만들고 잘 건조하였다 하여도 가마 안에서 제작자가 예상하지 못하는 변수를 만나 새로운 결과물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저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저의 모습, 확장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의 삶과 같이 느껴졌습니다.
생존-개인의 생존과 서로간의 상호작용-을 드러내는 소재로는 주로 나무와 곤충, 인체, 사자, 장기와 세포의 형상을 불러옵니다. 나무는 나무가 가진 특유의 네트워크와 식물이라는 정박하여 주어진 환경을 수용하고 극복하며 찾아내는 기작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곤충의 경우 주로 사람의 집에서 다시 나타나는 벌레에 집중합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 무결한 듯 인공적 재료로 수직 수평의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그 틈을 파고들어 자신들의 터를 가꾸고 생존하며 다른이(인간)의 터전에 침투하여 생존하는 힘이, 거주자인 저에게 강하게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사자는 강한 힘을 가진 맹수임에도 사회적 생활을 하는 동물입니다. 아무리 사자가 강한 맹수여도 사회에서 이탈한 사자는 생존해내기 어렵습니다. 부상을 당하거나 자신의 왕국을 뺏기는 등 도태되게 되면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모습을 보며 안전망이 무너진 인간 사회가 연상되었습니다.
현대 사회가 가진 속성, 자본주의 물질주의 등과 그런 사회에서 내가 살아내는 모습, 내가 하게되는 생각 등을 생존이라는 원초적 본능으로 귀결하고 이를 다른 생물들에게서도 포착해내고 표현하고자 합니다.
동적 관계.
덕지덕지한 공생체. 공생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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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관계. 공생. 공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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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화면에서 여러 생물이, 각각의 고유한 색감을 보이고
그것들이 부딪히며 화면 안에 장력을 만드는 것은
내가 생태계, 나와 내 주변을 인식하는 것, 세상이 돌아가는 인상과 같다.
얕게 살고 싶지 않고
깊게 보며 살고 싶지만,
깊게 관여하고 싶진 않다.
나의 관찰들이
다른 관람자들에게
좋은 발견이 될 수 있기를.